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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5-21 10:40
담임 목사님 경기헤럴드 인터뷰 링크
 글쓴이 : 은성교회 (121.♡.180.24)
조회 : 57,544  

담임 목사님의 인터뷰가 경기헤럴드 5월 17일자
"경기헤럴드가 만난 사람"에 실렸습니다.
경기헤럴드 메인 페이지에 뜬 배너를 클릭하시면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ggherald.com/

아래는 기사 전문입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할렐루야~!!
 
 
ⓒ (주)경기헤럴드
 
 
'신은 인간에게 견딜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을 준다고 한다. 그 고통을 이겨내는 자와 이겨내지 못한 자는 본인들의 몫이다. 고난을 받아도 행복과 기쁨으로 승화하여 많은 이들을 구도하고 있는 홍일 목사.
그는 생사의 기로에 서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고 자수성가하여 타의 모범이 되고 있는 목회로 은은한 빛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자수성가의 길로 가다.
남이섬과 잣으로 유명한 경기도 가평군이 그의 고향이다. 대학교 교직원인 부친 슬하에 남매로 태어난 그는 기독교 집안에서 곧게 성장했다. 부친은 대학교에서 틈틈이 성경공부를 하시면서 목회를 꿈꾸셨다. 모친은 가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게 하려고 맞벌이를 하셔 집에는 늘 남매만 지내야 했다.

그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해서는 한 군데에서 교육을 받지 못했다. 가정형편상 가평에서 춘천, 춘천에서 서울로 이사를 하는 바람에 학교에서 적응할 여지가 없었다. 친구를 사귈 즈음이면 이사로 인해 그는 깊게 사귄 친구가 없었다. 그로 인해 그의 성격은 소극적이고 내성적으로 변해 남 앞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했다.

중학교배정은 그에게 더욱 아픔을 주었다. 그의 초등학교 졸업생 중 한 명도 배정되지 않는 학교로 그가 배정되었고 버스로 30분을 타야해 외로운 학창시절을 보내야 했다. 집에 오면 아무도 없는 집, 동생이 유일하게 반겨주었고 가족과의 대화는 기대할 수 없을 정도였다.

고등학교는 중학교보다 더 먼 곳에 배정되어 1시간가량 버스를 타고 가야했다. 더욱이 배정받은 학교의 면학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지 않아 공부는 스스로 알아서 해야 했다. 중도에 학교를 그만 두는 학생, 취업하는 학생, 퇴학 맞은 학생 등등으로 인해 조용하고 얌전한 그에게는 학교가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가 고 2때 대학을 가고 싶어 하교길에 있는 교회에 갔다. 지하 기도실에서 청소를 하고 혼자 간절히 기도를 했다. 하나님에게 도움을 구했다. 집에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공간, 마음이 외로움으로 인해 그는 한 없이 기도하면서 울었다. 그는 몇 달을 똑 같이 교회에 가서 기도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굳건히 다져갔다.

어느 날 그는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처음 느껴보는 뜨거운 마음이 생겨 그는 헌 책방에 가서 대입문제를 사서 부친이 있는 대학교의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방학 때는 새벽에 나서 도서관이 문을 닫을 때 귀가하곤 했다.

고3 첫 모의고사를 봤다. 결과는 모두 의심하는 눈초리였다. 공부에 흥미가 없는 아이가 갑자기 반에서 4등을 한 것이었다. 친구들도 선생님들도 혹시 부정으로 성적을 올리지 않았나 그에게 추궁도 하기도 하고 믿음이라는 자체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는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지만 교회에 가서 기도하며 평정심을 갖곤 했다. 그는 공부하지 않으면 희망과 미래가 없다는 것을 기도를 통해 알아 더욱 더 공부에 열중했다. 전교 등수도 잘 나오고 수능시험에서도 그가 기대한 만큼 나와 성균관 대학교 영문과에 합격을 했다.

꿈을 찾아 가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그는 1년 장학금을 받고 성균관대학교에 입학을 했지만 부친이 퇴직을 하고 개척교회를 하신다고 선언을 하셨다. 그는 공부에만 집중하고 싶었지만 부친으로 인해 그는 작은 건물로 이사를 가고 그 곳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했다.

그는 2학년부터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과외 2~3군데, 그것도 부족하여 근로장학생을 신청하여 동생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스스로 학비를 마련했다. 기존의 아르바이트로 부족할 때는 교직원식당에서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했고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여 공부와는 점점 멀어져 갔다. 그는 대학시절 , 도서관에서 공부만 하는 친구들이 가장 부러웠다고 한다.

결국 그는 휴학계를 내고 카투사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카투사는 미병사와 생활을 하다 보니 영어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었고 재학시절 공부하지 못한 부분을 군대에서 그는 채워나갔다.

전역을 하고나서도 친척집에서 운영하는 가게에서 배달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어느 날 밖으로 볼일 보려고 나가는데 호흡이 힘들고 배가 너무 아파 순간적으로 하나님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그런데 그에게 들려오는 소리는 왜 내가 널 살려 줘야하는가라는 소리를 듣고 그는 급히 택시를 잡아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서 십이지장과 위에 천공이 생겨 위 3분의 1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게 되었다. 그는 수술이 끝나고 마취에서 깨어나, 죽음에대한 깊은생각을 했다고한다.

그때부터 덤으로 사는 인생, 낮은 자세로 임해야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사람으로, 물과 밥을 먹는것만도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공부하며 어렵게 졸업을 했다.

수원에 있는 유신고 영어 교사로 발령받아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받아보는 급여를 안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고 한다. 제자들에게 많은 공부를 시켜 미래와 희망을 주겠다고.

제자들에게 매일 쪽지 시험을 보게 하고 점수가 되지 않는 학생들은 나머지 공부를 시키며 공부시키는 악명 높은 교사로 자리 잡아 갔다. 교직에 발령받자마자 부친이 동두천으로 목회를 옮기셔서 그는 주말마다 동두천으로 가 부친의 목회를 도와야 했다.

동두천에서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결손 아이, 가정형편 때문에 나이차가 많이 난 결혼, 매춘, 가출소녀 등 형용할 수 없는 정도로 어려운 사람들과 생활하며 그들에게 희망과 미래를 줘야겠다는 마음으로 틈틈이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재직하고 있는 학교의 동기생이 7명정도 있었다. 그들은 의기투합하여 학생지도, 1주일에 1회 학생을 위한기도, 방학 때는 부흥회 개최 등 뜨거운 마음으로 지도해 나갔지만 동두천 사람들을 잊을 수 없었다. 그가 수원에서 동두천까지 4년 동안 주말마다 부친의 목회를 도와주다보니 그가 얻은 결론은 목회활동이었다.

정든 제자들을 뒤로 하고 학교에 퇴직과 동시에 총신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급여의 일부를 등록금으로 내고 부족한 부분은 아르바이트로 마련하면서 대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그러던 도중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달콤한 신혼시기에 그의 부인도 그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부창부수라 금술이 좋은 그의 부부는 서로의 사랑으로 그를 대학원 졸업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부친과 교단이 상이하여 부친으로부터 독립을 할 때 마음이 매우 아팠다고 한다. 부목사를 3년 한 후 목사로 안수 받고 은성교회 청빙 목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이웃을 섬기는 목회자가 되다.

부친의 개척교회에서 고생을 하다 은성교회 청빙목사로 부임하면서 교회가 빛과 소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전도해 나갔다. 어느 날 남성성도들과 식사 중에 한 성도가 1달에 1회 정도 자장면 봉사를 실시하면 좋겠다고 제안, 모두 동의하여 시작했다.
화덕설치비도 , 자장면 재료도 성도들이 마련하여 2006년부터 노인정 어르신, 장애인 가족, 보육원 아이들에게 무상으로 봉사하고 있다.

은성교회에서 자장면 봉사를 한다는 소문이 서울까지 나 영등포에서까지 노숙자 50~80명이 와 처음에는 당혹스러웠다. 노숙자들에게서 나는 냄새로 인해 어르신들에게 불편한 식사가 되어 교회에서는 앞 건물, 교육관에서 따로 식사를 할 수 있게 했다.

노숙자들은 옷과 신발 등이 없을 때에는 교회에서 마련해주기도 하고 병자에게는 약품을 제공하여 가장 편안한 공간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의 교회에 다니지 않는 분들도 자장면 봉사와 여러 봉사에 동참하고 있다고 한다.

시흥이나 여러 지역에 식사를 하고 싶은 분들을 자신의 차량으로 모셔오는 성도, 직장의 업무에 지장이 없도록 하고 동참하는 성도 등 많은 분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하고 있기에 자장면 봉사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더욱이 교회 주변은 주택가라 주민들이 많은 양해를 해 주신 것에 그는 늘 감사하다고 한다.

지금은 자장면 봉사시간이 되면 150-200여분이 오셔서 식사를 하고 있다.
봉사를 하면서 성도들이 바자회를 시작하자고 제안하여 처음에는 후원금이 얼마 되지 않아 사회에 많이 환원할 수 없었다. 성도들이 바자회하는 재료와 제품을 모두 자비로 마련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많은 성금이 되어 백혈병 환자, 암환자,어려운분들에게 지원할 수 있었다.

은혜를 입은 한환우의 어머니는 수세미를 만들어 교회로 가져와 눈물을 흘리며 많은 성도들에게 감사를표하기도 했다는 홍일 목사.

요즘은 성도들이 괴산 등지로 직접 가서 쑥을 몇 가마씩 뜯어오고 쌀도 성도들이 후원하여 쑥떡으로 바자회를 연다. 최고의 제품으로 만든 쑥떡은 삽시간에 판매되어 많은 성도들이 더큰은혜를 나누는 풍성한교회를 만들고 있다. 그는 교회의 확장보다도 성도들에게 이웃 섬김과 사랑에 역점을 두고 있다.

그는 강석조 목사님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한 교회에서 34년 재직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시는 선배 목사님을 늘 닮고 싶다고 한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꿈을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일러주고 있다. 내가 지금은 찾을 수 없지만 길이 있음을 믿고,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있음과 넓은 마음을 잃지 않고 생활하면 좋은날이 올 것이라고 자신의 경험을 말해 주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대학과 대학원을 아르바이트로 공부하며 자신의 꿈을 잃지 않은 그는 언제나 긍정적인 마인드로 생활에 임하고 있다.
어려서 소극적이고 조용하기만 했던 소년이 하나님에게 간절히 기도하고 자신의 꿈을 키워 만인을 위한 섬김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은 그를 믿고 따라준 성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성도들에게 감사를 돌렸다.

그에게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주신 시련을 이겨내지 못했더라면 그는 은혜가 가득한 은성목회의 목회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주는 희망은 꿈을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우리들의 꿈을 위해 하늘이 주신 시련을 잘 극복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이면 더욱 미래가 밝을 것이다.

약력
경기도 가평군 출생
성균관대학교 영문과 졸업
유신고 영어교사 역임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은성교회 담임목사
은성사랑봉사회대표 
 
송용순 기자 sys5594@hanmail.net
“경기헤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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